"반격명령 기다리던 8분… 지옥 같았다"
입력 : 2011.11.21 01:34 유마디.권승준.김은정 기자
[연평도 포격 1년 화염 속 K-9 자주포 위 그때 그 병사, 이영대 상병]
"아직도 고막서 '삐―' 소리… 그날 못갚은 게 너무 분해"
하늘엔 새까맣게 적 포탄… K-9으로 뛰어, 포 내부로 불길…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포탑 해치를 열고 둘러보니 온통 불바다였어요.
그 불길 속에서 우리는 반격했습니다. 해병이니까요."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흘 뒤인 26일자 본지 1면에는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져 화염과 연기가 치솟는 가운데 K-9 자주포가 반격을 준비하는 사진이 실렸다. 포탑 위에는 한 해병대원의 뒷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 K-9 자주포 6문 가운데 1호인 '선봉하나포'와 부사수 이영대(23) 상병의 모습이었다.
20일 만난 이씨는 당시 사진 속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굉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아 상황 파악을 위해 포탑 해치를 열고 나왔지요. 적의 공격이라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대응사격 준비에 나섰습니다." 지난 4월 제대 후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회계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씨는 "그날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의 휴대전화에는 당시 본지 1면 사진이 바탕화면으로 깔려 있었다.
작년 11월 23일 연평도의 해병은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K-9 자주포에 올라 반격했다. 당시 반격을 준비하는 이영대 상병(흰색 원)과 이씨의 최근 모습(오른쪽).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날 선봉하나포에는 이 상병과 함께 포반장 이명주(23) 하사, 사수 강승완(22) 병장, 조종수 박태민(21) 상병, 장전수 임준영(22) 상병 등 5명의 해병이 탑승하고 있었다.
임 상병은 방탄모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대응 사격에 나섰던 바로 그 해병이다. 탄약수 장민석(19) 이병은 하나포 뒤편에서 포탄을 공급했다. 선봉하나포의 장병들은 동족에게 포탄을 쏘아댄 북한군에 맞서 맹반격을 퍼부은 해병의 상징이다.
이씨는 "당시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은 북한군의 포격 이후 13분 만에 이뤄졌다. 대응사격 준비는 5분 만에 마쳤지만 사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서 "반격하고 싶은데 사격 명령을 기다려야 했던 그 8분은 정말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제대로 못 갚아준 게 아직도 분하다. 북한이 또 도발하면 연평도로 달려갈 것"이라고 했다.
◇"전우가 있는 하나포로 돌아가야 한다"

조종수 박태민 상병은 휴가를 떠나기 위해 연평도 선착장에 서 있다가 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들었다.
하늘에는 포탄 수십발이 새까맣게 날아오고 있었다. 선봉하나포의 조종수였던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곧장 부대로 향했다. 20일 본지와 만난 그는 "그때는 선봉하나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상병은 포반장 이명주 하사와 함께 선봉하나포에 탑승, 이미 대응 사격을 하고 있던 전우들과 합류했다.
이날 박 상병처럼 휴가를 나가기 위해 선착장에 있다가 포격 시작 후 귀대하던 연평부대 중화기중대 서정우 하사는 포격으로 큰 부상을 당해 끝내 전사했다. 박씨는 "모두들 훈련 때 했던 것처럼 실수 없이 해내자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지난 5월 제대한 그는 충북 제천 대원대학 전기전자공학과 1학년에 복학했다. 친구들이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물을 때면 "군인은 주어진 임무를 하는 사람이고, 나도 그랬다"고 말을 줄인다.
자주포 조종수 박태민씨(사진 왼쪽)와 자주포 사수 강승완씨.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지금의 삶은 덤, 더 열심히 산다"
선봉하나포 사수였던 강승완씨는 "당황했지만, 강한 훈련 덕에 몸이 먼저 알아서 움직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열려 있던 자주포 뒷문으로 불길이 밀려들면서 장전수 임준영 상병의 방탄모 외피에 불이 붙었던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순식간에 자주포 내부를 가득 채웠지만, 소화기로 불길을 잡고 곧바로 반격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죽지 마라. 살아서 보자"며 대원들을 진정시켰던 포반장 이명주 하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전우애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습니다."
무선통신으로 들리는 중대장과 다른 포대의 교신 내용은 긴박했다. 사격 준비가 다 됐으니 명령만 내려달라는 포대들의 아우성에도 상부의 대응사격 명령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선봉하나포가 불을 뿜었다. 그는 "상황이 종료되기까지 약 3시간 동안은 1분이 1시간 같았다"고 했다. 강씨는 지난 1월 전역해 경북대 전자공학부 2학년에 복학했다. 그는 "지금의 삶이 덤처럼 느껴져 더욱 열심히 산다"며 "공학 서적을 오랜만에 잡으니 어렵지만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이겨낸 정신력을 떠올리면서 다시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도망자 단 한 명 없이 용맹하게 연평도를 지킨 연평부대원 모두가 진정한 해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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