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 – 1828) 는
스페인의 낭만파 화가인데 화가로서는 드물게 작품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았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보수적 봉건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이였고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누드화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야가 종교재판을 받았던 이유는 실물 크기의 여성 누드화을 그렸다는 것이였습니다.
서양 최초로 여성의 체모가 그대로 드러난 그림을 그린거죠.
바로 그 그림이 너무나 유명한 ‘옷을 벗은 마하 (The Nude Maja)’ 였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고야의 누드 그림을 외설적이라하여 전시를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고야는 ‘옷을 입은 마하 (The Clothed Maja)’를 다시 그렸습니다.
불행히도 이 그림도 전시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야는 살아 생전에 자신의 마하 그림이 전시되는 것을 못보고 죽었습니다.
스페인 정부 당국은 그림을 압수하였다가 고야가 세상을 떠난 후 8년이 더 지난
1936년에 Academy of Fine Arts에 돌려 주었습니다.
지금은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성 모독적인 그림 옷을 벗은 마하
프란시스코 고야 (1746년 -1 828년) 의
옷을 벗은 마하, The Nude Maja, 라 마하 데스누다, La Maja Desnuda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는 신성모독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옷을 벗은 마하는 신화 속의 여신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신화와 아무 상관이 없는
실존하는 여성을 그렸다는 것으로 그 시대 상황으로 봤을 때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림의 사이즈는 98 x 181cm 이며 캔버스에 유화로 1797년 – 1800년에 그려졌다고 합니다.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며 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보는 이 당당한 포즈의 여성은 누구일까요?
모델은 마누엘 데 고도이 (Manuel de Godoy) 스페인 수상의 소실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알바 공작 부인이라고도 하며 고야의 애인 (부인이 아니라)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확실한 정보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 누드보다 앞서 그려진 누드 그림이 있는데 스페인의 디에고 벨라스케의 ‘거울 속의 비너스 (Diego Velazques Rokeby Venus)’로 정면이 아니라 등을 보이고 있는 그림이죠.
이 그림은 현재 스페인에 없고 영국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옷을 입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The Clothed Maja, 라 마하 베스티다, La Maja Vestida
‘옷을 입은 마하’는 고야가 ‘옷을 벗은 마하’를 그리고 난 후
같은 모델 같은 포즈로 옷을 입은 형태로 그렸습니다.
신발을 신기고 얇은 옷을 입혀 놓으니 더 요염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군요.
스페인에서 ‘마하’라는 말의 뜻은 풍만하고 매력적이며
요염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군요.
하지만 찾아보니 사전적인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더군요.
스페인의 자랑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년 3월 30일-1828년 4월 16일)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법정 화가가 되다
고야의 ‘종교재판’
고야는 1799년 최초의 스페인 법정화가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혐오하는 종교재판 광경을 어둡고 음습하며 가혹한 유형으로 표현하였고
그의 작품들 속에 풍자하였습니다.
고야 자신도 1815년 종교재판에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법관들은 고야가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옷을 벗은 마하’를 그렸는지
설명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설명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고야는 법정 화가의 자리를 박탈당했습니다.
1824년 스페인에 자유당 내각이 다시 들어서길 바랬으나 실패하자
고야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으로
자발적인 추방을 당하여 182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기서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스페인의 자랑 고야의 마하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자랑스럽게 두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전시회와 우표 발행
1930년 스페인과 미국 공동으로 두 마하 전시회를 스페인 남부도시 세빌르 (Seville)에서 하게 됩니다. 고야를 위한 특별전시관이 있었는데 “La Quinta de Goya” (고야의 전원주택, the country-house of Goya)이라 명명 되었습니다.
전시회의 비용 조달을 위해 두 세트의 우표가 발행이 되었는데 가격이 그때 당시 무려 5달러 였다고 합니다. 이 우표는 사적으로 발행되었으며 주최측은 일정량의 우표를 스페인 우체국 관리에게 주었습니다. 우체국은 3일 동안 (1930년 6월 15-17일)만 사용할 수 있다면서 우표를 판매하였습니다.
1930년 6월에 발행된 기념 우표입니다. (maja-fdc.jpg)
오리지날 10P (의미를 잘 모르겠음) 우표는 오직 9.800 장 발행되었습니다.
1932년과 1969년 사이에 영국 런던의 워터로우와 아들 (Waterlow & Sons) 사에서
원본 인쇄용 판을 사용하여 우표를 발행하여 판매를 하였기 때문에 1930년도의 첫 우표와 구별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우표의 발행은 늘어 났지만 우표 수집가들의 관심은 높았으며
1930년대의 절취선이 없는 우표는 절취선이 있는 것 보다 6배나 가격이 높았고
현재는 오직 3장만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년도가 인쇄되어 있지 않지만 기록으로 미루어 볼때 세번째 세트가 4장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1996년 발행 우표가 아닌가 합니다. (maja-cinderella.jpg)
세계 여러나라에서 발행된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 우표들입니다.
자료출처: huffingtonpost.co.uk, wikipedia, artonstamp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