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계훈제
계훈제(桂薰梯, 1921년 12월 31일 ~ 1999년 3월 14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정치인 겸 언론인으로,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 재학 중 징용령을 거부하고 조선민족해방협동단에 참여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 민주수호국민위원회, 민주통일국민회의 등에 참여하여 활동했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도피를 했고, 금고를 당했지만 문민 정부 출범 이후 민주화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편집] 생애 초기
1943년 경성제국대학에 입학 하였다. 그러나 경성제대 재학도중 징용령이 떨어지자 그는 학병을 거부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 건국동맹과 연계했던 항일독립운동 단체 '조선민족해방협동단'에 활동했다. 1945년 8·15 광복후 경성제대가 이름을 바꾼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여 문리대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섰고, 미군정에 의한 서울대학교의 국립화에 반대하기도 하였으나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이 되었다. 이후, 교육자로 일하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 사상계 편집장과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귀국 직후의 김구를 도와 일하다가 1945년부터 이철승 등과 함께 우익 학생단체를 이끌고 신탁통치 반대투쟁의 선봉에 서서 활동하였으며, 그는 서울대 문리대학생회장으로 백범 김구, 김규식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8년경 30대에 우연히 얻은 폐결핵이 악화되어 평생 폐관련 질환에 수시로 시달림을 당했다.
반 군사정권, 반 유신 운동
1963년 이후 윤보선,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박정희의 군사정권과 유신에 반대하였고, 전두환 집권 이후에도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고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로 인해 1970년대와 1980년대 수차례 투옥당했다.
1963년부터 1964년 윤보선, 장택상, 장준하, 함석헌, 이범석 등과 함께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했고, 1968년 윤보선, 장준하, 김대중 등과 함께 월남전쟁 파병 반대운동에 가담하였다.
(김대중이 이때의 인연으로 , 계훈제를 정치적선배로 모시며, 계훈제와이철승의 김구 주석과의 인연을 빌미로 본인도 김구 와 친분관계가 있었다는 물타기를 하기 시작하여..현재에도 마치 김대중이 김구와 인연이 있는 사이로 비춰지는데, 김대중과 김구
주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오히려 해방이후 김구,계훈제,이철승,등이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김대중은 계훈제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였으며,결국 1999년 계훈제 사망시 김대중은 조문조차 오지 않았다.)
1969년 박정희, 윤치영 등의 삼선개헌에 반발하여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에 가담하여 활동했고, 10월 유신 이후에는 민주수호국민위원회, 민주통일국민회의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75년 장준하 장례식에 참석하고, 그해 9월 장준하추모비 제막에 참석하였다. 1978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났고,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수배되기도 했다.
[편집] 생애 후반
1980년 전두환 정권에서 금고를 당했다가 1984년 4년만에 해금조치되었다.
1987년 9월 통일민주당의 경선에서 김영삼에게 패하고, 10월 후보 단일화 협상을 거부한 김대중이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이때 김대중의 지지자이자 미국의 경제학자로 있던 최기일 박사가 계훈제에게 찾아와서 김대중을 지지해 달라고 했으나 계훈제는 거절하였다.
계훈제는 김대중을 지지해 달라는 최기일에게 '자네는 머리가 돌았나? 그의 사람됨됨이를 알기나 하나?' 하며 지지를 거부하였다.
계훈제는 자신을 설득하러 온 최기일에게 김대중의 부정적인 면모를 설명하며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성명을 바꿨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최기일은 계훈제가 김대중은 나쁜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기타.
정치인이며 15대 대통령인 김대중의 두번째 부인 이희호와 한때 연인이었으나 이희호는 김대중과 결혼하였다.
목사 박형규는 그를 평하여 "계훈제, 그는 20세기 한국의 마지막 진인(眞人)이다. 계훈제만큼 철저히 명(名), 리(利), 권(權)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계훈제를 모르고 어찌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말하랴."라고 평하였다.
(이희호 자서전 보면 알겠지만,계훈제와 이희호가 단순히 연인이라??? 판단은 책 읽어 보시고 각자의 몫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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