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여자들

한심한 어느 장모와 사위 이야기

친가유 2014. 5. 22. 19:38

한심한 어느 장모와 사위 이야기

 

 

 

장모는 사위좀 나무라면 안 되는 건가요?

 

 

신모계사회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여성에게 배우고 일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면서 여성의 목소리도 커진 게 그 배경이겠지요.

그 중에서도 요즘 들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모계의 파워는 주로 육아를 담당하는 장모님의 목소리인 듯 합니다.

별별다방에 도착하는 사연들 중에도, 장모님 스트레스가 시어머니 스트레스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이제는 사위도 벙어리, 귀머거리 3년이란 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입니다.

억압받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이, 딸들에게는 조금 다른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당신이 그토록 힘겨워하던 그 옛날 시어머니의 일그러진 거울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존여비 사상에 젖은 사위

장모는 사위좀 나무라면 안되나요?

 

저는 딸만 둘을 키운, 환갑의 엄마입니다.

우리 젊을 때 표현으로는 아들을 못 낳은 ‘죄인’이지요.

당연히 시댁으로부터 압박을 받으며 살았었고 남편은 지금까지도 아들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을 둘이나 가졌으니까요.

지금껏 부모 속 한 번 썩힌 적 없고,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모든 면에서 인정받는 대견한 딸들입니다.

 

그 중 맏딸이 마침내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친정 엄마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작년에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손자까지 얻었습니다.

사부인이 아이를 키워주시겠다고 나서셨지만, 제가 더 강력히 자청하여 아이를 맡았습니다.

아무래도 딸에게는 친정이 편할 테고 혹시라도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맡겼다가 딸이 시집 스트레스를 받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딸 내외는 제가 사는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습니다.

딸과 사위는 매일 우리 집으로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갑니다.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자고요.

주말에는 종일 우리 집에서 지내다가 잠까지 자고 가지요.

물론 녹초가 되도록 힘든 생활입니다.

아이 키우는 것보다 사위 대접이 더 버겁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데 상차림부터 신경이 바짝 쓰이더군요.

그러나 그런 건 시간이 갈수록 나아졌습니다.

사위도 자꾸 부딪히다 보니 만만해지더군요.

딱 거기까지면 서로 좋은데 문제는, 갈수록 사위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우선 우리 사위는 한 마디로 곰 같은 타입입니다.

아들 없는 집에 사위로 들어왔으면, 아들 비슷하게 애교도 부리고 곰살맞게 구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이 사람은 거의 입을 떼는 일이 없습니다. 말만 없는 게 아니라 행동도 거의 없습니다. 굼뜨고 느리고, 게으릅니다. 딸이 만삭일 때도 커피 타 달라, 양말 찾아 달라 온갖 심부름을 다 시키더군요.

예정일이 다 돼 가는데 술을 먹고 오질 않나, 출산일에도 아무런 이벤트가 없더군요.

내 친구 누구는 어버이날, 사위가 장문의 감사 편지를 써서 육아 스트레스를 날려주더라는데 우리 사위는 그런 맛이라고는 없지요. 늘 현금이 든 봉투가 전부입니다.

 

나한테는 아무렇게나 해도 좋으니 딸한테는 자상한 남편이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럴까 싶습니다.

사부인이 너무 귀하게 키우셔서 그런 것인지 남존 여비 사상 같은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 사고방식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부부가 화합하기 힘들 게 뻔했지요.

 

그러다 지난 사월, 딸의 결혼기념일이 있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결국 사위가 기념일을 그냥 지나치더군요.

그 일로 둘이서 티격태격하기에 알았습니다.

처음엔 미안하다고 하더니 나중엔 더 이상 잔소리 듣기 싫다는 눈치였습니다.

장인 장모 결혼 기념일, 처제 생일도 아무 성의 없이 케잌 하나로 때우기에 어쩌나 두고 봤더니, 본인 결혼기념일은 아예 기억도 못 한 사위. 가족을 아끼고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작심하고 좀 나무랐습니다.

딸이 없을 때, 이야기좀 하자고 불러앉혔지요.

지금껏 내 눈에 걸린 것들을 다 들추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저는 딱 한 가지 이야기만 했습니다.

아내가 엄마처럼 왕자 대접해줄 것으로 기대하지 마라. 세상이 달라졌다.

여자도 남자 못잖게 배우고, 일하고, 버는 세상이다.

아내로서 대접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굳이 결혼에 얽매여 있을 여자는 없다.

나 역시도 딸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그 며칠 뒤에 일이 터졌습니다.

딸이 아이를 시집에 맡기겠다는군요. 집도 시집 근처로 옮기겠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냐고 물었더니, 사위가 강력히 요구해서 어쩔 도리가 없답니다.

장모님이 이혼을 종용했고, 이대로 가다가는 100퍼센트 우리는 이혼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는군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습니다. 만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그 정도 야단쳤다면 얘깃거리도 안 되겠지요.

장모는 사위를 좀 나무라면 안 되나요?

내가 언제 이혼을 종용했나요?

거짓말로 모녀 사이를 이간질까지 하며 본가로 돌아가려는 사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처가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여자를 얼마나 하찮게 본 것인지........

 

지금까지의 내 노고는 온 데 간 데 없고 나 때문에 이혼 운운하니, 억울한 노릇입니다.

요즘 장서 갈등이 만만치 않다더니, 그게 우리 집 일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