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의 최종 판결
황우석의 '논문조작'은 그 자체로 법적인 범죄는 아니었음.
논문을 조작한 것은 과학적 사기일 뿐이고, 그에 대한 처벌은, 학계에서의 매장, 학위 박탈, 교수직 박탈 등 학문적 처벌이면 충분했음.
그런데 황우석은 왜 재판까지 받아야 했었나.
그것은, 연구비를 횡령하고, 연구원들 난자를 강제로 빼내 불임의 위기에 처하게 한 것 등등이 현행법 위반이기 때문임.
황우석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비록 논문조작은 했을지언정, 황우석은 분명 기술적 진보를 가져왔는데, 그런 사람에게 연구할 기회를 뺐어버린 것은 가혹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음.
하지만 과연, 황우석이 기술적 진보를 가져왔는지, 뭔가 새로운 걸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게 현실임.
그리고, 그 누구도 지금까지 그가 연구할 기회를 박탈했던 적이 없음.
다만 사기를 쳤으니, 사회적 지원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고, 실제로 지금도 그는 자체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음.
황우석 사건 당시 서울대에서는 진상 조사위를 구성해 조사를 했지만, 조사위를 당황하게 한 것은, 조사를 할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
그렇게 긴 시간동안 엄청난 연구비를 받고,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뭔가를 했다고는 했는데, 문서화 된 실험실 노트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임.
황우석이 당시 그렇게 자랑했던 복제소 '영롱이'. 이에 대한 논문이 단 한 편도 없음.
수백 개의 인간 난자로 실험을 했는데, 실험 과정을 기록한 노트가 단 한 장도 없음.
이것만으로도 이미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서울대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던 연구실이었는데 결국 서울대는 뒤통수 맞은 셈임.
세계를 뒤흔들었던 황우석의 줄기세포에 관련된 논문이 두 개 있었으나, 이 두 개 논문이 다 조작된 것으로 밝혀짐. 우연히 만들어졌던 줄기세포는 딱 하나 있었지만, 이 조차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황우석 스스로도 모름.
열 몇 개를 성공시켰다고 논문에 썼지만, 알고 보니 한 개도 없었고, 만든 과정에 대한 기록 자체도 없음.
그럼 과연 황우석은 그동안 어떤 일을 했었나.
단순히 과학 사기를 쳤다면, 그것으로 학계에서 매장되면 끝이지만, 여기서 끝이 아닌 것이..
사실상 있지도 않은 연구실적을 가지고 대기업에서 후원을 받았었음.
자신의 줄기세포가 상업화 되었을 때 최초로 취급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댓가로, SK로부터 연간 15억씩 5년 간 연구비 지원을 해 달라 했음. (SK는 법정에서, 그것은 거래로써 오고 간 게 아니라 단지 순수한 후원금이었다고 증언하여 황우석의 사기혐의가 약해짐)
황우석은 당시 참여정부 과학정책을 움직이던,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정통부장관들과 정기적으로 식사를 나누며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대화의 자리를 자주 나누었음.
(이 중 누구는, 그가 식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에 기재된 황우석 논문에 공저자로 올라가기도 했고, 황우석에게 지원되는 연구비 중 일부를 자신의 연구비로 유용하기도 했음)
황우석은 (자신이 운영하는) 소를 기르던 경기도 농장에 정기적으로 유력 정치인들을 초대하여 소고기 파티를 했었고, 여기에 초대되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당시 과학자로서 그 어떤 정치인보다 더 유명하고 높은 위치에까지 갔었던 사람임.
황우석은 서울대 동기동창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와 모든 경조사에 같이 나타나기도 했고, 황우석과 서울대 동기인 정동영 전 대통령 후보는 황우석을 열린우리당에 입당시켜 출마시키려고도 했었음.
황우석 논문이 조작됐단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황우석은 마치 정치인이 그러하듯 병원에 입원을 했음. 누군가와 통화하며, '사실은 안 아픈데 괜히 입원한 거'라는 대화 내용의 녹음파일이 풀려나오기도 함. 이때 수도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병문안을 오고, 그 중 박근혜도 병실에 찾아 왔었음.
도대체 왜 황우석은, 이토록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력한 정치인들을 사귀고 권력을 확보하고 청와대 장관들과 접촉을 하고 그랬을까. 과연 이 사람의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황우석이 가장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힘들어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헛된 기대를 준 것이었음.
서울대학교는, 논문이 발표될 때, 연구에 있어서 윤리적인 위반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연구윤리위원회가 심사하고 승인을 하게 되어 있음.그런데 황우석은 연구윤리를 많이 위반했음에도 승인이 떨어졌음. 연구윤리위원회에까지도 황우석의 힘이 미치고 있었기 때문.
연구윤리위원회의 연구위원을 황우석이 임명까지도 했음. 그 중에 한 명, 어느 목사가 있었음. 그의 아들은 사고를 당해 척추장애로 걷지 못하는데, 황우석은 이를 자신의 연구로 해결할 수 있다 속였고, 연구가 실용화되면 가장 먼저 그의 아들에게 수술을 집도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그 목사를 연구윤리위원에 들어와 달라 종용했음.
그 아이는 황우석 연구에 필요한 체세포를 제공했음. 그 아이의 어머니는 황우석의 실험실에 난자까지 제공했음. 이 목사는 끝까지 황우석을 믿었음.
황우석은, 2005년 7월 31일 일요일 저녁 6시 KBS1. '과학기술진흥과 노벨상 꿈나무를 위한 열린음악회'에 출연하여, 당시 무대에 참여했던 클론 강원래를 가리키며, '내가 이 사람을 벌떡 일으켜 다시 춤출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연설도 하며 국민적 영웅이 되려 했음.
차라리 이 사건을 우리나라 네티즌과 언론이 스스로 밝혀낸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음. 유시민 당시 장관도 '언론의 자유가 너무 지나치다'며 PD수첩을 비난했었고, 노무현 대통령도 완전히 속아 '국가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었음. 지금에 와서 보면 오히려, 언론과 인터넷의 역할이 가장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사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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