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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이야기 / 2008년 7월의 글

친가유 2014. 9. 9. 10:04

경기고 이야기 / 2008년 7월의 글

    

 

 

 

  

한국을 움직이는 人材들 : 1~3급 공무원, 대표적 CEO, 검사, 국회의원들 가운데 경기高 출신이 最多. 학계·의료계 진출이 가장 많다

●『우리는 묵묵히 各者의 길을 갈 뿐이다』

●『「거지 교육정책」으로 천하의 경기는 「校舍와 역사」만 남아

●비디오 아트 창시자 白南準-작곡가 朴椿石-쇼트트랙 金東聖-가수 尹亨柱

李相欣 月刊朝鮮 기자(hanal@chosun.com)

코스모폴리탄


『나는 정치적인 이야기는 모릅니다. 아예 묻지를 마십시오』
경기高 동창회 사무실에서 만난 경기동창회보 편집위원장 李應吉(이응길·45회)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자기는 동창회 일만 할 뿐 大選에 대해서 말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문인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49회) 前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 것에 대한 대다수 경기인의 반응 또한 李씨와 별로 다르지 않다. 大選이야기만 나오면 이들은 「관심없다」며 침묵하거나 「될 만한 사람 되겠지」라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랫동안 동창회 부회장직을 맡아온 徐立圭(서립규·52회) 우림 콘크리트 대표는 경기고 출신들이 大選에 대해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개개인의 지지 성향을 경기고 전체 동문과 결부시키기에는 경기고라는 조직이 너무 크고 복잡하다. 경기인들은 기본적으로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다. 동문이라고 무턱대고 지지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누가 그를 지지하라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날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경기인들은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세계주의자) 성향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는 경기고가 특정지역의 人材를 배출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人材를 배출하여 學緣(학연)과 地緣(지연)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徐씨는 결국 경기인의 이러한 성향이 경기고 분위기를 만든다고 말한다.

『보통의 조직에서는 甲이라는 사람이 감투를 쓰면 내가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경기고는 좀 다르다. 나도 내 동기로 高建(고건) 서울시장, 李鍾贊(이종찬·前 국정원장)씨, 金宇中씨가 있지만 동창들이 이런 사람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소리는 못 들어 보았다. 高建 시장도 동창회에 나오면 아무 빈 자리에나 앉아야 하는 한 명의 동창일 뿐이다. 다 잘난 사람들끼리 누구를 중심으로 뭉쳐서 무슨 이익을 기대하겠는가. 누가 후보에 나선다고 하든 경기인들 사이에서는 큰 뉴스거리가 안 된다』

경기 출신 대통령을 바라는 진짜 마음

동창회 측은 언론에 경기고가 부각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 역시 예민한 시점에 경기고가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 학연주의와 지역주의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경기동창회보 2001년 12월10일자에는 경기인들이 경기 출신 대통령을 바라는 마음이 좀더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이 글은 尹銘重(윤명중·49회) 한국언론 포럼 회장이 同회보「경기춘추」라는 칼럼에 쓴 것이다.


<…전국의 영재들이 모여 들었던 「천하의 경기」는 선배와 校舍(교사)만 빼고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학교로 전락했다.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발상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던 우리 경기는 그 빛나는 전통을 빼앗기고 훈장처럼 역사만 남게 되었다. 대통령을 잘못 만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줄 2002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월드컵도 잘 치러야 하지만 나라의 命運(명운) 을 맡길 대통령을 뽑는 일도 중요하다. 교육의 下向 평준하를 과감히 타파해서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교육이민을 가지 않게 하는 정치인, 청렴결백하고 정직하며, 무엇보다도 제대로 배운 식견이 있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하는 것은 우리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尹회장은 이 글 머리에서 우리의 교육정책을 「거지정책」이라고 비판한 후 이런 교육정책으로 경기고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취재에서 경기고 출신 인사로부터 빼놓지 않고 들었던 말이 두 가지 있다. 바로 「경기고는 지역 고등학교가 아니다」란 것과 「평준화 교육정책이 나라 망친다」는 것이었다. 文鉉根(문현근·57회) 동창회 前 사무국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는 여느 경기 출신 인사와 마찬가지로 먼저 緣故主義(연고주의)에 얽매이지 않은 경기인의 특징을 설명한 후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文씨는 『학생이 공부 잘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各 지방에 명문高가 있어야 한다. 다같이 못 되자고 평준화해 놓고는 이제 와서 自立型 사립高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또 뭐냐』고 말했다.

능력에 대한 자부심

경기인들이 지연이나 학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은 구성원들의 인적구성이 다른 지방의 명문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경북고, 경남고, 부산고, 광주일고, 전주고, 목포고 등과 같은 他지방 명문고들은 그 지역 출신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지만, 경기고는 서울 출신이 많기는 하지만 50% 이상이 全國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채워진다.

경기고 출신들이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 속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숨어 있다.


全國 입시 경쟁을 통해서 「경기」라는 이름을 달았다는 이들의 자부심은 他학교 출신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서울대는 한 해 5000명이 들어갈 수 있지만, 경기고는 500명도 못 들어간다는 말은 경기고 출신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낼 때 인용되는 말이다.


성수중학교를 나와서 경기고에 진학한 72회(1976년 졸업) 한 인사는 『당시 열다섯 반 1000여명의 학생 중에 경기고에 진학한 사람이 10여 명밖에 안 되었다』면서 이런 현상은 서울시내 다른 중학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교 평준화가 되기 전까지 서울대 전체 입학생의 10% 이상이 경기고에서 나왔다.

경기인들 사이에는 서울대학에 가는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학교에서 꼴찌한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궁금해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올 정도다. 전국의 최고 수재가 모인 경기고는 경쟁상대 학교가 없었다. 다른
학교에서는 「경기고를 따라잡자」가 목표였지만 경기고의 경쟁상대는 바로 옆 자리의 친구뿐이었다.

64회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李和鍾(이화종·64회-1968년 졸업) 화일교역 대표는 경기 출신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어떤 위치에 오른 사 람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그는 『경기인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연줄과 백(back)」으로 출세하려는 것을 싫어한다. 최선을 다했느냐 다하지 않았느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韓相鎬(한상호·64회-1968년 졸업) 변호사는 『경기인들은 반칙을 싫어한다. 자기가 노력해서 무엇을 성취하다 보니 남들도 당연히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나 선배나 개인의 능력이 프로답지 않으면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 경기인의 특징이라며 이런 점에서 삭막한 면은 있겠지만 사회발전에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

金泳三 정부 시절 문화체육부 次官을 지낸 바 있는 경기관광공사 설립준비위 金鍾民(김종민·64회) 위원장은 경기인들의 인물 검증법을 소개했다. 그는 『경기인들은 동창이 소위 권력의 중책을 맡는다고 해서 곧바로 달려와서 「잘됐구나」 하지 않는다. 두세 달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냥지켜보다가,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동창들 사이에서 검증되면 그제서야 와서 축하를 하고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경기인들은 이렇게 경쟁을 통한 자기 몫 찾기에는 익숙한 반면, 그동안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모래알 동문」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단합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 가장 큰 이유이다.

1997년에도 李會昌 총재, 李洪九(이홍구·49회) 前 의원, 朴燦鍾(박찬종·54회) 前 의원이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격돌을 벌였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 세 명이 경기고 출신인데다 李會昌 총재와 李洪九 의원은 49회로 기수까지 같았으니 단합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했던 것이다.

尹泳五(윤영오·58회)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2002년 2월7일자 경기동창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경기인들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단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처럼 전문성과 봉사정신, 개선주의(실천과) 지역주의 타파의 미덕을 지닌 엘리트일지라도 연대하지 않으면 그 기여와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금년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21세기 들어 처음 맞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르는 중요한 「기회의 해」이다.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는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세계 문명에도 기여하는 역할을 하였으면 한다. 기회는 잡기 어렵고 놓치기는 쉽다는 사마천의 경구를 음미하면서…>

한 기업 CEO(최고경영자)는 경기고 출신이 단합이 되지 않는 근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수재들끼리 다투다 보니 경쟁이 체질화되어 있고, 자기가 최고라는 인식은 남에게 신세지기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사회에 나와서도 인맥을 통한 승진이나 이익을 기대하지 않으니 자연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뭉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울대 심리학과 金明彦(김명언·69회) 교수는 『서울대 사회과학대 안에도 10여 명의 경기고 출신 교수가 있지만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없다』며 全서울대가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고는 「모래알 동문」이 아니라 「바위동문」이라고 주장한다.

『뭉치고 안 뭉치고 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자기 분야에서 필요한 일을 하기도 바쁜데 몰려다닐 시간이 어디 있나. 뭔가에 의지해서 집단적인 힘을 발휘하려는 못난 사람이나 뭉쳐 다닌다. 경기고 동문은 各者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최고의 가치를 발휘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움직이고 바위 같은 힘을 내게 되는 것이다』

공부벌레 아니다

경기고 동창회는 기수, 지역, 분야, 동호인 별로 모임이 있어 다른 여느 학교 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고 총동창회는 2000년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기금 조성을 위해 各 기수별로 5000만원을 할당했다. 총동창회 측은 별 힘 안 들이고 이 돈을 다 거두었다. 1억원 이상을 모아 낸 기수도 있었다.

현재 총동창회 아래에는 각 기수별 동기회가 있고, 동기회 안에는 지역별 모임이 있다. 분야별 모임으로는 산우회, 법조회, 화정회(정보통신분야), 화우회(그림), 연우회(연극), 신우회(종교) 등 취미별 업종별 모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연우회는 故 李樂薰(이낙훈·50회)씨가 주동으로 조직하여 현재는 연극인 申久(신구·52회·前 연우회 회장)씨, 「아침이슬」의 작곡가 金敏基(김민기·65회)씨,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극에 깊이 심취해 온 吳英鎬(오영호·61회)씨, 現 연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李恒(이항·56회)씨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연우회는 2000년 경기고 100주년 기념 행사 때 「나비의 꿈」이라는 작품을 예술의 전당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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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우회 회원인 崔景漢(최경한·47회), 李滿益(이만익·53회), 姜敬求(강경구·68회)씨는 朝鮮日報가 주최하는, 한국화단의 가장 권위 있는 賞인 이중섭賞을 수상한 바 있다.

閔興基(민흥기·55회) 경기고 교장은 일부 사람들이 경기고 출신들을 공부벌레라고 인식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미술부에 있던 학생이 工大에 진학하거나 연극하던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경기고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말했다.

경기인도 IMF는 비켜가지 못하고

대부분 경기고 출신들은 정기적인 동창회를 제외하고는 소모임을 결성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었다.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만나면 마금회, 세 번째 금요일이면 삼금회 같은 간단한 명칭을 붙여 놓고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하는 소모임이 많이 있다.

마금회는 서울 강북지역의 직장에 거주하는 64회 경기고 출신 모임이다.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앞(舊경기고 후문 부근) 동기가 운영하는 韓식당에 모인 이들은 먼저 오는 순서대로 인사를 하고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魚(어당) 모임회장을 비롯, 具滋俊(구자준) 럭키생명 사장, 白紀烈(백기열) 前 LG건설 부사장, 鄭鎭世(정진세) 한화건설 상무이사, 韓相鎬(한상호) 변호사, 金善用(김선용) 공인회계사 등 열 명 정도였다.

주로 1949~1950년생인 이들 64회는 IMF 외환위기의 영향을 그대로 받은 기수이기도 하다. 현재 64회의 20~30%가 IMF 외환위기 영향으로 쉬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金善用씨는 『선배 기수들 같았으면 우리 나이쯤 되었을 때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우리는 IMF 이후 대기업 중역으로 있다가 회사를 그만둔 동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金善用씨는 POSCO(舊포항제철) 해외 수주팀 담당이사로 있다가 IMF 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후 신용평가 정보회사 관련 일을 하기 위해 53세 되던 재작년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는 충정법무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대학 때 따놓은 회계사 자격증을 IMF가 되어서야 써먹는다고 농담을 했다.

경기고 출신 중에는 金善用씨처럼 늦게 박사학위를 따거나, 전공을 바꾸거나, 轉職(전직)을 하는 등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 64회 한 기수만 보더라도 전공을 바꾼 사람으로 崔春根(최춘근) 변호사와 李基承(이기승) 모던뱅크 사장, 洪錫炫(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이 있다. 崔春根 변호사는 서울대 화공과 졸업 후 서울법대로 편입하여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李基承 모던뱅크 사장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다음 전공을 바꾸어 하버드 MBA 과정을 마쳤다.
洪錫炫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SK 사장이었던 劉承烈(유승열)씨는 최근 벤처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차리면서 轉職을 한 경우다. 이밖에 학교 다닐 때 천재로 소문났던 李俊求(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학이란 한 우물을 파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학자다. 국내 미시경제학의 大家로 알려져 있는 그는 지금도 공부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시험 쳐서 들어온 세대와 평준화 세대

83회 총무이면서 기업체 이사인 金榮必(김영필)씨는 1987년에 졸업하였다. 金씨는 경기고의 막강한 선배들에게 기가 죽어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동창회 같은 곳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평준화 졸업의 첫 세대는 73회이다. 시험 치르고 입학한 마지막 기수인 72회는 종로구 花洞 교정에서 졸업했으나,
73회는 그들이 고3 때인 1976년 삼성동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삼성동 세대」라고 불린다.

평준화 첫 세대인 서예가 宣柱石(선주석)씨는 『우리 73회들은 선배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들이 다른 학교처럼 구타를 하거나 모욕을 주지 않고 굳이 벌 줄 필요가 있을 시 가벼운 팔굽혀 펴기 정도의 기합만 주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다만『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너희 선배들은 공부를 잘한다. 너희들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자격지심이 들었던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69회는 선후배 간 단합의 교량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 기수는 1년에 세 번 회보(경기69)를 만들어 동기는 물론이고 선배와 후배들에게 배포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른 기수 동창회 회보는 일반 신문 용지에 인물 동정기사로 메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기 69회보」는 16면 타블로이드 컬러판으로 제작된다.

69회는 이 회보를 만들기 위해 7~8명의 회보위원을 구성한다. 崔平洛(최평락) 동창회 총무, 嚴相益(엄상익) 변호사,
申聖淳(신성순) 여행 전문가 등이 회보의 주요 필진이다. 이들은 동창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취재를 한다. 嚴相益 변호사는 36호 회보에 삼성 SDS에 근무하는 朴俊性(박준성) 박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썼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은 朴俊性 박사가 한국을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산업국으로 만들기 위해 교수직을 뿌리치고 귀국했다는 내용이다.

崔平洛씨는 동문들을 취재하다 보면 잘된 동문뿐아니라 불행하게 된 동문도 많이 본다고 했다. 그는 『경기고 출신들은 자기 자신을 적당히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적응하지 못한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뛰어나야 하는데 경기인들 중에는 혼자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다 보니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최고라는 자부심이 경기고를 단결시킨다

경기고의 밴드부는 들어갈 수는 있어도 탈퇴는 어렵기로 유명했다. 합주라는 것이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나도 전체의 화음을 맞추지 못하면 안 되는 곳이라 그만큼 규율이 심했기 때문이다. 밴드부에서는 탈퇴를 하게 되면 소위 「빠따」라 부르는 「매타작」을 50대나 치는 규율 때문에 겁이 나서도 탈퇴를 할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밴드부를 탈퇴한 崔晩植(최만식·72) 옐로우 코리안 페이지 대표는 요즘 후회가 막급하다.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했다는 그도 빠따 세례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탈퇴 후 한참을 숨어다녔으나 결국은 밴드부로 도로 잡혀 왔다. 선배와 동기들로부터 50대를 맞고 겨우 탈퇴는 했으나 맞은 자리가 터져서 며칠 동안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지난 2월23일은 서울 강남구청 지하에서 규율이 세기로 유명했던 경기고 OB밴드부(졸업생 밴드부)의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OB밴드부는 매월 둘째주와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여서 연습을 한다. 오후 2시가 넘어서자 머리 희끗한 老교수, 점퍼 차림의 의사, 회사에서 금방 달려 온 젊은 사장 등이 저마다 트럼펫, 트롬본, 클라리넷 같은 악기를 하나씩 들고 강남구청 지하 강당으로 모여 들었다.

이날 연습에는 許元茂(허원무·48회·지휘)씨, 安漢聖(안한성·54회) 안흥상사 대표, 李淳雨(이순우·54회) 한성대 교수, 權文勇(권문용·58회) 강남구청장 등 60회 이전 선배기수를 비롯해 金正眞(김정진·71회) 명지대 교수, 金明圭(김명규) 민주당 이종걸 의원 보좌관, 魚慶滿(어경만·80회) 교보증권 노조위원장 같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후배기수를 포함해 서른 명이 참가하였다.

지휘를 맡은 許元茂씨는 6·25 때 군악대에 있었고 이후 美 해군 군악학교를 나왔다. 경기고 재직時에는 밴드부를 직접 맡아 지도했던 선생님이다. 許씨의 제자들은 『許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가끔 톱을 가지고 연주를 하셨다. 곡에 대한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許씨는 일흔 고령에도 불구하고 밴드부의 연습이 있는 날이면 오산에서 올라와 두 시간 동안 지도를 한다.

매번 연습 때마다 새로운 곡을 작곡해 오는 지휘 선생님의 이런 열정 때문에 단원들은 요령을 피우고 싶어도 피울 수가 없다고 한다. 이날 연습을 위해 許씨는 단원들보다 한 시간 미리 나와서 칠판에 당일 연주할 곡의 리듬을 그리면서 단원들을 기다렸다. 단원들이 모이자 許씨는 연습곡에 삽입된 라틴계 리듬인 룸바, 삼바, 차차차, 맘보 등이 어떻게 다른지
손뼉으로 일일이 리듬을 만들어 가며 설명을 하였다.

생존자 3만5000명

설명이 끝나자 許씨가 직접 작곡한 「경기의 상징」이란 행진곡 연습에 들어갔다. 許씨는 불협화음이 조금만 나와도 박수를 치며 연주를 중단시키고 음을 바로잡은 후 다시 지휘를 하였다. 이렇게 연습에 몰두한 지 한 시간 가량 지나자 許씨와 단원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단원들의 악보는 이리저리 덧칠해 놓은 필기 자국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이들은 1988년 결성한 이래 벌써 14년째 한 달에 두 번 이곳에 모여 이렇게 연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경기고에서 밴드부는 없어졌다. OB밴드부는 밴드부의 대를 잇기 위해 가입을 희망하는 후배들의 경우 오디션을 실시한 후 받아들인다.


경기고는 1900년 개교한 이래 한 세기가 넘는 동안 약 4만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그 중에 생존한 사람은
3만5000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 파악 가능한 현역들은 1999년 기준으로 약 1만5000명 정도. 이 숫자는 같은 해 우리나라 인구 4600만명의 0.03%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이 소수의 인원이 곳곳에서 인맥을 형성하고 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에 포진하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가 작년 3월 고위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3급 공무원 중 경기고 출신이 7.3%로 가장 많았고, 경북고가 4.6%, 광주일고가 3.9%로 뒤를 이었다. 2000년 7월 기준으로 검사 1191명의
출신학교를 분석해 보면 경기고가 56명(4.7%), 경복고 25명(2.1%), 서울고가 24명(2.0%)이다.

경제계도 마찬가지다. 실무전문가 267명이 정한 우리나라 대표 CEO 74명 중 경기고가 12명으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月刊朝鮮 2002년 1월호). 현역 국회의원 역시 단일 고교동문으로는 가장 많은 25명이 경기고 출신이다.

한 경기고 인사는 이런 경기고 인맥에 대해 『경기고 출신끼리만 알아도 하나의 사회가 형성된다』며 『他학교에서는 소외감을 느낄 만하다』고 말할 정도다.


학계와 의료계에 많은 인물 배출

경기고 출신들이 우리 사회의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포진해 있는지 인맥 구성을 살펴보면 대충 이 학교의 기본적
성향과 사회적 비중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경기고 동창회가 개교 100주년 즈음해서 펴낸 분야별 경기인맥 명부를 보면, 일반 회사원을 포함한 財界에 분포한 인원(금융 부문 제외)이 6105명으로 전체 1만1439명 가운데 53.4%를 차지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學界(연구 부분 포함)가 2149명(18.8%), 의료계가 995명(8.7%)을 차지하고 있다. 財界를 제외하고 전통적으로 경기고 출신들이 많이 진출한 학계, 관계, 법조계, 의료계, 금융계의 종사자는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68회 한 기수를 업종별로 분석해 봐도
비슷한 비율을 나타낸다. 이 기수의 업종을 분류해 보면, 전체 졸업생 680명 중 교육 99명(14.6%), 관계 18명(2.6%), 금융계 41명(6%), 법조 21명(4.1%), 의료 82명(12%), 기업 및 개인사업 177명(26%), 해외거주 176명(26%)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 학계, 관계, 법조계, 의료계, 금융계 종사자는 39%로 나타난다.

학계와 의료계는 경기인이 특별히 많이 진출하는 분야다. 전체 경기인 중 학계와 의료계에 진출하고 있는 비율은 각각 18.8%와 8.7%로 두 분야를 합치면 27.5%의 경기인이 이 두 곳에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기고 출신에게 「왜 학계, 법조, 의료계에 많이 종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수, 의사, 판검사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인생 코스였다』


직업선택에 있어 경기인들의 독특한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직업선호도를 따른 것뿐이라는 것이다. 한 경기고 출신 인사는 경기인 중에 특히 교수가 된 사람이 많은 것은 학생들 집안이 留學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경우가 많았던 것도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졸업생 중 13.6%가 대학교수

學界에 진출한 경기인 수는 財界를 제외하고 가장 많다. 전체 경기인 중 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비율이 13.6%나 된다. 서울대 공대 李長茂(이장무ㆍ59회) 학장에게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하게 일하면서 큰 업적을 세운 현직 교수 몇 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한참을 생각하다가 『너무 많아 추천할 수가 없다』는 대답을 했다. 2000년 펴낸 「경기인 100年史」에서도 學界의 경기고 출신에 대해 870페이지짜리 책의 3분의 1 이상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을 정도다.

경기 출신 學界 인사 중 국공립-사립대 총장 자리에 오른 인사는 50여 명이 넘는다. 權彛赫(권이혁·37회), 金鍾云(김종운·45회), 鮮于仲皓(선우중호·54회) 등 3명의 서울대 총장을 비롯, 兪鎭午(유진오·20-1회·고려대), 尹泰林(윤태림·22회·숙명여대), 鄭在覺(정재각·28회·동국대), 車洛勳(차낙훈·29회·고려대, 숙명여대), 丁炳烋(정병휴·38회·조선대), 李康爀(이강혁·50회·외국어대), 高建(고건·52회·명지대), 李在禎(이재정·58회·성공회대) 등이 대학총장의 면모들이다.

국어학자인 崔鉉培(최현배·11회), 영문학자 異河潤(이하윤·19회), 역사학자 尹瑢均(윤용균·20-1회), 趙容萬(조용만·23회), 金元龍(김원룡·36회) 등은 초창기 국내 學界를 선도하던 경기 출신 인사들이다.

국어학자로는 成百仁(성백인·48회·서울대), 李廷玟(이정민·55회·서울대), 영문학자로는 金鎭萬(김진만·40회·성공회대), 「창작과 비평」을 창간한 白樂晴(백낙청·51회·서울대), 李永傑(이영걸·53회·한국외대) 등이 꼽히고 역사학에서 李普珩(이보형·38회), 閔錫泓(민석홍·39회)등이 눈에 띈다.

특히 정치학에선 金達中(김달중·53회), 韓昇洲(한승주·54회), 金悳(김덕·50회), 朴東緖(박동서·43회), 金榮國(김영국·46회) 등 많은 교수들을 배출했으며, 경제학에선 邊衡尹(변형윤·40회), 趙淳(조순·45회)을 비롯해 金德中(김덕중·52회),
金信行(김신행·57회), 李奎億(이규억·59회), 鄭雲燦(정운찬·62회), 朴元巖(박원암·68회) 등 면모가 화려하다. 경영학에선 郭秀一(곽수일·55회), 趙東成(조동성·63회), 張夏成(장하성·69회) 등이 눈에 띈다.

이 외에 사회학의 李珏範(이각범·62회), 金文朝(김문조·64회), 지리학자 겸 풍수학자인 崔昌祚(최창조·64회), 심리학의 金明彦(김명언·69회) 등의 면면이 보인다.

자연과학 계열은 경기 출신 교수들이 특히 많이 배출된 분야다. 예를 들어 서울대 화학과의 경우 31명의 교수 중 10명이 경기고 출신이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성가를 날리고 있는 인물들이 많은 편이다.

물리학에선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李輝昭(이휘소·48회)를 비롯해,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음을 밝힌 任志淳(임지순·66회), 吳世正(오세정·67회) 등이 나왔으며 화학에선 국내 화학계를 연 李泰圭(이태규·15회)씨를 비롯 徐正憲(서정헌·63회), 한국인의 게놈지도 초안을 완성한 徐廷瑄(서정선·66회) 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李會昌 등 25명의 현역 국회의원

政界의 경기인은 현재 정치의 중심축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많다. 현재 경기고 출신 국회의원은 대통령 후보에 출사표를 던진 李會昌 한나라당 前 총재와 金槿泰 민주당 고문 등 25명으로 고교별로는 가장 많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는 지난 2월 기획위원장을 맡아 黨으로 복귀한 尹汝雋(윤여준·54회)을 비롯 金杞培(김기배·51회), 鄭在文(정재문·54회), 孫鶴圭(손학규·61회), 朴柱千(박주천·56회), 鄭寅鳳(정인봉·67회), 崔燉雄(최돈웅·49회), 兪成根(유성근·64회), 朴源弘(박원홍·56회), 黃勝敏(황승민·53회), 柳興洙(유흥수·54회), 李相培(이상배·54회), 李柱榮(이주영·66회), 朱鎭旴(주진우·64회), 金容鈞(김용균·56회) 의원 등이다.


민주당 국회의원으로는 金槿泰고문을 포함 鄭大哲(정대철·58회) 고문, 金元吉(김원길·57회), 柳在乾(유재건·52회), 李在禎(이재정·58회), 辛基南(신기남·66회), 李鍾杰(이종걸·72회) 등 7명이고 자민련에는 鄭宇澤(정우택·68회) 의원이 있다.

政界의 경기고 가운데는 54회 출신이 돋보인다. 현역으로 柳興洙, 鄭在文, 李相培 의원이 있는데 한때는 9명이 한꺼번에 국회에 진출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경기고 법조회에 등록된 인원은 400여 명. 법조인 수 역시 단일 고등학교로는 제일 많은 숫자다. 趙容淳(조용순·15회), 趙鎭滿(조진만·19회), 李英燮(이영섭·33회) 등 3명의 대법원장과 李鳳成(이봉성·30회), 金斗喜(김두희·55회) 등 2명의 검찰총장을 배출했다.

세 대법원장, 두 검찰총장 배출

李會昌 前 한나라당 총재의 부친인 李弘圭(이홍규·21회)옹, 曺圭光(조규광·39회) 前 헌법재판소장, 柳鉉錫(유현석·41회) 경실련 공동대표, 鄭在憲(정재헌·52회)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도 눈에 띄는 인물들이다.

지난 2월4일 이루어진 검찰 검사장급 38명의 인사에서 경기고 출신으로는 韓富煥(한부환·62회), 明魯昇(명노승·61회) 검사장이 법무부 차관과 대전 고검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安東壹(안동일·54) 변호사는 『현직의 경기고 출신 후배 검사들이 특정高 배제라는 인사정책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인재가 몰린 학교에서 인재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韓相鎬 변호사도 우리 사회의 엘리트를 질시하는 경향 때문에 한때 법조계에서는 서로 모임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고 출신이란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官界 요직이나 검찰
쪽에 동문이 있는 경우 잘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패를 짓는다」는 오해를 받기 싫다는 것이다.

財界는 趙錫來(조석래·50회) 효성그룹 회장, 朴容旿(박용오·52회)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 경기인이 많이 진출한 분야다. 전체 경기인 중 회사 임원이나 CEO급만도 22.5%나 된다. 경기인이 가장 많이 진출한 회사는 大宇그룹. 金宇中 前 대우그룹 회장이 경기 출신인 것이 많이 작용한 결과다. 1999년 大宇사태로 한 차례 파동을 겪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건재하다.

財界 인물 중 정보ㆍ통신분야 업체의 경기고 출신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업체의 1~3위 중 1·2위 업체의 최고 경영자가 경기고 출신이다. SK 텔레콤의 表文洙(표문수·68회) 사장, KTF의 李容璟(이용경·56회) 사장이 경기고 출신으로 우리나라의 정보산업 분야를 이끌고 있다.

33회의 三府 정상 獨食

官界의 경기고 인맥은 한때 우리나라 3부 요인이 전부 경기고 출신이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깊다. 1981년 崔圭夏(최규하·33회) 대통령 시절, 閔寬植(민관식·33회)씨는 국회의장 暑理를, 李英燮(이영섭·33회)씨는 대법원장을 지냈다. 33회 동기동창들이다.

경기고는 지금까지 한 명의 대통령에 초대 국무총리 李範奭(이범석·14회), 朴忠勳(박충훈·32회), 崔圭夏(33회), 陳懿鍾(진의종·35회), 李會昌(49회), 李洪九(49회), 高建(52회) 등 7명의 국무총리를 배출하였다.

민선자치 단체장으로 趙淳(조순·45회) 前 서울시장, 高建 서울시장, 林昌烈(임창렬·58회) 경기지사, 權文勇(권문용·58회) 강남구청장, 愼重大(신중대·61회) 안양시장, 李昊鍾(이호종·45회) 고창군수 등이 있다.

지난 1월29일 단행된 개각에 경기고 출신으로는 丁世鉉(정세현·60회) 통일부 장관, 張丞玗(장승우·62회)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장관급에 임명되었고, 차관급으로는 金炯基(김형기·66회) 통일부 차관, 申仲植(신중식·55회) 국정홍보처장이, 청와대 비서진으로 韓悳洙(한덕수·63회) 경제수석이 기용됐다.

현재 경기고 언론인 모임인 화동클럽에는 언론계를 떠난 사람까지 포함 총 252명이 등록되어 있다. 경기고가 배출한 대표적인 언론인으로는 方一榮(방일영·39회) 前 조선일보 회장, 洪錫炫(64회) 중앙일보 회장, 李永德(이영덕·58회)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이 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白南準(백남준·47회), 가야금의 대가 黃秉冀(황병기·51회), 탤런트 韓振熙(한진희·64회), 작곡가 朴椿石(박춘석·43회), 연극 연출가 金光林(김광림·66회), 가수 尹亨柱(윤형주·62회) 등은 경기가 자랑하는 문화예술계의 인물들이다. 체육인으로는 동계올림픽 쇼트 트랙 금메달을 딴 金琪焄(김기훈·82회), 蔡智薰(채지훈·89회), 金東聖(김동성·94회)이 경기고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