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한 이름들
< 科擧 合格者 >
姜 導 (강 도) : 純祖 19년 己卯年(1819) 합격, 癸丑(1793)년 출생
尹誠敎 (윤성교) : 肅宗 8년 壬戌年(1682) 합격, 乙亥(1635)년 출생
康 侃 (강 간) : 英祖 9년 癸丑年(1733) 합격, 庚辰(1700)년 출생
李範仁 (이범인) : 高宗 25년 戊子年(1888) 합격, 戊午(1858)년 출생
李時發 (이시발) : 宣祖 22년 己丑年(1588) 합격, 己巳(1596)년 출생
李寶之 (이보지) : 世宗 2년 庚子年(1420) 합격, 幼學합격자, 縣監을 지냄
<한국의 인물>
. 高拔奇 (고발기) :
高句麗 8대 新大王의 장남이었으나 아버지에게서 신임을 받지 못하고, 동생인 男武에게 太子 자리도 빼앗
긴다. 男武(9대 故國川王)가 왕위에 오른 후, 196년 연나부의 귀족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으나 실패하여
후한의 요동 태수인 공손강에게 의탁해 기회를 노렸으나 고국천왕에게 진압당하고, 요동에서 여생을 보냈음
. 高發岐 (고발기) (? ∼ 197년)
高句麗 8대 新大王의 3남으로 큰 형인 高拔奇 (고발기)와 이름의 발음이 같다.
197년에 고국천왕이 죽자, 황후인 禹씨는 왕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發岐를 찾아가 왕위에 오를 것을 요청한
다. 그러나 고국천왕의 죽음을 몰랐던 發岐는 이를 거부하고, 왕위는 동생인 高延優(고연우 10대 山上王)
에게 돌아 갔음.
이후 禹氏와 延優가 자신을 속이고 왕위에 오른 것을 원망한 發岐는, 군사를 동원해 궁궐을 공격했고,
山上王의 처자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山上王의 막내동생인 高瀱須(계수) 의해 진압 당하고,
發岐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였다.
. 高助多 (고조다) (478 ∼ 489)
高句麗 20대 長壽王의 장남으로 古鄒大加 벼슬로 있었으나 아버지가 왕위에 오래 있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일찍 죽어, 아들 羅雲이 長壽王 뒤를 이어 21대 文子明王이 되었음.
그래서 "조다 = 쪼다" 라는 말이 생겨났음
. 金自知 (김자지) :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1404년(태종 4) 집의가 되고 1408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1418년 호조참판, 1419년 형조참판이 되고, 다시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 원주목사가 되고
1423년(세종 5)에는 평안도관찰사, 1428년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同知摠制 성개(成槩)의 노비에 대한
잘못된 판결로 파직되었다. 뒤에 개성부유후(開城府留後)로 재기용되어, 1434년에 관직에서 물러났음.
한문에 뛰어났고 음양, 천문, 지리, 의약 등에도 통달하였으며, 불교를 배척하고 유학을 숭상하였다.
. 王字之 (왕자지)
서리(胥吏)에서 시작하여 왕국모(王國모)가 이자의(李資義)를 죽일 때 궁문을 지킨 공으로 도교량(都校令)
이 되었으며, 숙종 때 내시를 거쳐 殿中侍御史가 되었다.
. 高 慈 (고자)
696년 거란을 토벌하는 군사(軍事)에서 문이 여하도토격대사에 임명되어 출진하자 종군하였다.
. 李子威 (이자위)
1706년(문종 30) 요나라의 황후가 상을 당하자 형부시랑으로 호부상서 왕석(王錫)과 함께 사신으로 다녀
왔다.
. 解 忠 (해충)
405년(17대 아신왕 14년) 9월 백제의 아신왕이 죽자, 당시 일본에 가 있던 태자 전지(腆支)가 돌아오기
를 기다리면서 아신왕의 동생 훈해(訓解)가 임시로 섭정을 하였는데 막내동생 설례(碟禮)가 훈해(訓解)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일이 발생하였다. 漢城에 살던 解忠은 이 사실을 모르고 귀국하던 전지를 찾아가
그 사실을 알리고 섬에서 머물며 수도로 들어오지 말 것을 충고하였다. 이후 설례는 백성들에게 살해당했고
전지는 무사히 왕위에 올랐다. 이 공으로 解忠은 406년(전지왕 2) 達率에 임명되고 조 1,000石을 하사
받았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전지왕은 407년 해수를 內法佐平에, 解丘를 兵官佐平에 임명하고, 왕비도
해씨 집안에서 맞아들였다. 이로써 왕비를 주로 배출했던 眞氏의 세력이 약화되고, 해씨 세력이 정권의 핵심
으로 부상하였다.
. 李河岳 (이하악)
1649년 山陵使로 천거되어 공로로 6품직에 제수되었다.
. 大簡之 (문간지)
중국의 화사회요(畵史繪要)를 인용한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그는 산수화를 잘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 安 習 (안습)
본관은 公山, 부(祖父)는 安翊(안익)
. 高若海 (고약해) (1377 ~ 1443)
본관 : 開城. 자 : 順平. 시호 : 貞惠. 고려 말, ·조선 초의 文臣.
1393년(太祖 2년) 成均試에 합격하였으며, 사간원의 추천으로 恭安府注簿가 되었다. 사헌부 掌令,
通禮門 판사, 대사헌을 거쳐 형조참판 ·慶昌府尹을 지냈으며, 1442년 開城府留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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