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런 이야기

아우슈비츠 신화가 가짜라는 주장

친가유 2014. 7. 29. 16:40

아우슈비츠 신화가 가짜라는 주장

 

 

 

당신이 아는 아우슈비츠는 가짜다.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 때문에 세상에 나도는 글을 잠시 엮어 봤습니다.

아우슈비츠에 일어난 홀로코스트 진위는 알아서 판단 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들은 10년전에 사이트에 올렸던 글이며 8년간 공개 되었던 글입니다.


<아우슈비츠는 가짜다!>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진실을 속이는 것이 천배 만배 쉽다는 것을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하물며 오래전 일이라면, 언론이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고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아우슈비츠 형무소에 가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는 것과

필자처럼 50번 이상 가서 뒤져보고 알고 있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 비루게네프-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의 시골 오슈비엥침의 독일식 발음이다.

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도 이지역 출신이다.

아우슈비츠에 한 번 들어갔던 정치인, 종교인, 창녀, 유대인이 다 죽었다지만

젊은 시절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멀청히 풀려나왔다.


<아우슈비츠를 직접 둘러볼 때 가지는 의문들>

 

우슈비츠 수용소 건물들은 잘 만들어 졌다. 벽돌로 지어졌고 내부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생지옥 같은 곳에서 중노동을 시키다 죽던지 말던지 할 사람들에게 저렇게 좋은 시설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숙소동 뒷 쪽에 가면 지금도 수영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영장이 왜 있어야 하나?


한번에 3,000명을 몰아넣고 독가스를 쏟아 부어 죽였다는 장소는 너무 비좁아 300명만 들어가도 사람들로 인해 질식사 할 지경이다. 그런 가스실과 소각로가 있는 건물에서 장교 숙소가 15m 정도도 안 떨어져 있다.

장교숙소 옆에 가스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가스실이라는 곳의 바닥엔 칸막이가 있던 흔적이 뚜렷하다. 가스실 이전에 용도가 뭐였을까?

바로 장교들 식당이었다. 그래서 칸막이 흔적이 있는 것이다.

소각로도 급조해서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소각로 벽돌은 붉은 색이며 그으름이 거의 없다.

그 곳에 대한 동영상이 나돌자 최근엔 접근을 할 수 없게 조치를 취했다.

소각로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벽도 역시 인위적으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에 이 가스실 바닥을 촬영한 동영상이 돌아 다니자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와서 간단하게 보고 나가게 만들었다. ,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내부에 희미한 불빛만 보이게 만들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시키고 있다.

진짜 아우슈비츠에서 600만이 죽었다고?

다양한 조사를 한 결과 600만이라는 숫자가 거짓임에 드러나자 100만까지 내려갔다.

유대인 우파와 좌파간의 갈등에서 나오는 대화 중 "불과 몇 천명 죽은걸 가지고 왜 떠드냐?"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만 죽었나? 러시아는 1,500만명이 죽었다.

독일의 드레스텐은 피난민과 현지 민간인만 있었고 군대가 없었음에도 하룻밤의 공습으로 40만명이 죽었다.


이스라엘은 매년 1천억 달러에 해당하는 피해보상금을 독일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받고 있다.

천문학 적인 금액 때문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우슈비츠 신화를 더욱 다지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세계 수 백 개의 사이트와 100종류의 책들이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그런 책을 만들거나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존재 하지 않았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을

재평가론자’ (Revisionist 리비져니스트) 또는 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을 재평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정주의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유대인 시오니스트에게 얻어맞아 중상을 입고 있고 체포되어 감옥에 가고 있다

국제적으로 대량학살에 대한서 분석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 언론의 자유가 절대 허용이 안되는 부분이다.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떠한 의심도 무기징역이다.(살인은 13-17년형을 사는데...)

관련 서적 : 홀로코스트 산업(원재 :The Holocaust Industry -2003 출간) 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은이),

신현승 (옮긴이) 한겨레출판


아래 자료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오래전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한 40개의 질문에 대한 영문을 번역한 것이다.

8년 정도 공개되었던 내용이며 한 동안 닫았다가 다시 공개한다.

 

 

1. 나치가 대량학살 또는 유대인 6백만을 죽였다는 증거가 존재 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살아남은 개인들의 서로 상반된 증언이 있고, 죽은 자들을 보면서 어떤 가스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만 있다.

결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사체를 소각해서) 쌓여 있는 재도 없었고, 모아놓은 옷도 없었고, 화장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없었고, 인간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도 없고, 사람의 피부로 만든 램프 갓도 없고, 어떠한 기록도, 사람에 대한 통계도 없다.

반면에 과학적 변론과, 인구학적인 분석, 기록물들, 수많은 일화등 엄청난 양의 증거가 있다. 600만 이라는 숫자의 유태인들이 죽었다는 것이 불가능한 명백한 증거가 되는 비교 사실은 이런 과장된 내용이 1000% 거짓임을 보여준다.

 

 

2.독일의 집단 수용소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일본인들과 독일계 미국인들을 의도적으로 격리 수용한 것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명칭 이외에 단지 다른 것이라면 독일의 수용소 용도는 독일의 전쟁집중에 위협할 요소가 있거나 위협적인 인물들을 강제수용 시킨 것이다. 반면 미국은 민족과 국가가 어디냐를 근거로 해서 사람들을 강제 격리 수용시켰다.

-위 사진: 발진티프스를 막기위해서 머리를 삭발한 여성 수감자들-

 


 

3. 왜 독일 당국은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시켰나?

 

이유는 독일이 보기에 유대인은 독일의 종주권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으며 명백한 사실로도 드러났다. 유대인들은 압도적으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대표했으며 공산주의 전복을 주장했다.

유대인 개인 개인들은 정부, 사회, 미디어의 매우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의 안전에 위험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자 강제 격리 되었던 것이다.

1933 324일 국제 유대사회는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 세계에 걸쳐 독일 물건 불매할 것을 정했다. 이런 운동의 이유는 독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을 끌어내리고 그 권력을 독일인들에게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불매운동 전개와 유대가 독일과의 전쟁에 대해서 전세계 신문들이 보도했고 방송이 되었다.

사실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는 2차 세게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벌써 돌아다니던 말이다. 따라서 독일이 유대인들을 적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은 지극히 정당화 된 것이었다 보여 진다.

 

 

4. 시몬 비젠탈은(SIMON WIESENTHAL) 독일 땅에 죽음의 캠프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다. 1975 4월에 출판된 *Books and Bookmen* 에서 그는 폴란드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가스로 죽였다고 했다.

 

 

5. 다카우DACHAU(: 독일 Munchen뮨션에 있는 수용소)는 독일에 있다. 시몬비텐탈은 지금은 비록 다카우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었다라고 하는데 왜 수 천명의 미국 재향군인들은 다카우를 죽음의 캠프라 말하나?

 

왜냐하면 연합군이 다카우를 접수하고 나서 (그리고 고의적으로 다카우 전임자 수십명들을 법적인 절차도 안 거치고 죽였다), 미국 하사관들이 캠프를 보여 주었고 가스실이라 의심되는 건물을 보여 주었다.

공식적인 홀로코스트 일화에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조용히 삭제되었다. 이유는 연합군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지역인 이곳에 접근하는 것이 너무 쉽고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곳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앙 파상(En passant) 다카우 죽음의 캠프 라는 간략한 내용의 책이 처음으로 철저한 조사를 하게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신화에 대해 역사가와 몇몇 연합군 재향군인들에 의해서 그들이 봤던 수용소와 읽었던 공식적인 기록이 상반되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전 있었던 일이다. 지금과 같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이 교정되어서 힘을 얻기 한참 전의 일이다.

 

 

6.독일이 아닌 폴란드에 있는 아유슈비츠에는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는 가스실이 존재 한다는 증거가 있나?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가스실은 가스를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곳이다. 공간이 너무 비좁고 공기가 차단된 곳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미국인 전문가 프레드 로흐터(Fred Leuchter)가 미국 패널들을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화학적인 조사를 위해서 아우슈비츠 가스실 벽을 긁어서 가져갔다. 미국인 패널들인 조사위원들은 아무런 청산가리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거짓이고 관광객들을 위해 만든 단순하고 얄팍한 속임수다.

 

 

7. 만약 아우슈비츠가 죽음의 캠프가 아니라면 이곳의 진짜 사용 목적은 무엇이었나?

 

이곳은 대규모 제조 공장이었다. 화학 합성 고무(Buna)를 만들었고 노동인력은 수감자들이었다. 같은 논리로 미국에서도 현재 수감 인력들이 점점 늘어나면 교정 또는 징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같다.

(참고- 중국은 현재천만 명의 수감자가 무임금 유노동을 하고 있다)


 

8. 악명 높은 지클론-(Zyklon-B) 가스는 뭐냐?

 

지클론 비는 상업적인 만들어진 시안화수소 가스 합성체다. 수 많은 공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 가스를 옷에 훈증해서 기생충이나 해충들을 박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아우슈비츠에서 사용되었다. 지클론 비는 아직까지 제조되는 물질이며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지금도 구매 할 수 있다.

 


(참고- 공장을 가동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현재 쉽게 구매 할 수 있다고 한다)

 

 

9. 만약 아우슈비츠가 살인 캠프가 아니라면, 수용소 소장 이었던 루돌프 회스(RUDOLF HOESS)는 왜 살인 가스로 유대인들을 죽였다고 자백했나? 

 

회스는 러시아와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에게 붙잡혔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회스는 600만 유대인들을 죽였다는 단 하나의 사항에 자백했고 (문서에)싸인 했지만 문서는 회스가 읽지 못하는 영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오리지날 문서들의 몇몇 페이지에는 글자 그대로 회스의 혈흔이 남아 있다. 회스는 간단하게 처형되었다. 연합군에 의한 시각에서 또는 다를 각도로 신문을 받아 보지 못했다.

 

 

10. 지클론-비가 사용된 공간을 환기시켜서 사람이 들어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20시간이 걸린다. 전체 과정은 극도로 조심스런 기술을 요한다. 가스 마스크를 사용해야 되고 숙달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