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식당 김치는 거의 먹지 않는다. 때깔을 보고는 아예 김치 맛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김치는 뒷맛을 길게 남기는 음식이다. 자칫 맛없는 김치 한 조각 입에 넣었다가는 그 식탁 위의 음식을 죄다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비싼 음식을 시켰는데 그릇에 미리 담아놓아 겉이 마르고 따뜻하기까지 한 김치가 나올 때면 상을 확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가면서 음식을 먹다가 체하기도 한다.
묘하게도 한국인은 그 맛없는 김치에 대해 좀처럼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인은 심성이 고와서? 아니다. 짬뽕 국물 짜다고, 라면 면발 불었다고, 햄버거 빵이 차다고 되물리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왜 김치만은 예외일까. 공짜로 주는 반찬이라서? 그럴 리가 없다. 식당 문 앞에 놓여 있는 사탕, 껌, 커피까지 내가 내는 음식 가격에 다 포함된 것이라는, 투철한 소비자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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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좋은 김치를 만든다는 공장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지역 농민과 계약하여 배추, 고추, 마늘 등을 구하고 젓갈까지 국산을 쓰는 곳이었다. 위생도 흠잡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완성된 포장 김치를 보다 깜짝 놀랐다. MSG와 사카린이 들어 있었다. 공장 사장에게 왜 이런 것을 넣는지 나는 물었고, 사장은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김치는 익어야 맛이 난다. 그런데 요즘 소비자는 익은 김치의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치를 버무리면 숙성 기간 없이 곧장 출고한다. 숙성되지 않았으니 맛이 빈 듯하고, 그러니 MSG와 사카린을 넣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맛있다고 한다."
김치 맛을 모르니, MSG와 사카린 맛으로 김치를 먹는 것이다. 첨가물은 공장에 따라 다를 것이나 대부분의 공장이 발효 없이 출고한다. 김치는 채소 '발효' 식품이다. 발효에 방점이 찍힌다. 김치 발효의 기제는 복잡하다. 배추와 무, 소금, 고춧가루, 마늘, 젓갈 등의 재료 차이, 그리고 숙성 방법과 기간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어떤가. 와인의 산지와 품종, 수확 연도의 날씨, 심지어 와이너리의 발효균 특성까지 설명을 듣는다. 옆에 놓인 치즈는 소젖인지 염소젖인지, 산양젖인지 또 자연 발효인지 접종 발효인지까지 아는 척을 한다.
김치는 어떤가. 배추 산지만 입에 올려도 감지덕지다. 배추 품종을 물으면 그건 왜 구별하는지조차 모른다. 발효 방법과 기간은 아예 궁금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걸 물으면 '더럽게 까다로운 놈'이라 여긴다. 서양 음식은 그래도 되고 한국 음식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어 있다. 눈길 한번 받지 못한 김치는 그렇게 식탁 위에서 바짝바짝 마르다가 쓸쓸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