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이야기

까치부대 김영빈 해병소령이 말하는 그때 그시절!

친가유 2014. 3. 30. 08:06

까치부대 김영빈 해병소령이 말하는 그때 그시절!

 

 

 

 

 

1968년 1월 16일 밤10시 황해북도 연산군의 위치한124군 특수부대가 영하 25도의 혹한 속에 남파 특수 공작원 31명을 개성 남동부에 위치한 남파공작원 초대소에서 “수령동지의 명령대로 임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 하면서 남파하였다.

 

수령 동지의 특별 배려로 하시관에서 파격적인 소위로 승진 발령 받은지 6일만에 임무를 받은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대통령을 암살하고,미 대사관. 육군본부, 교도소, 서빙고 간첩 심문소를 파괴하고 모든 요인을 암살 하는 것이며 김신조는 2조 조장으로 청와대를 맡았으나 아군에 의해 모두가 사살되었고 김신조만이 생존하여 지금은 목사로서 살아가고 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긴급히 이에 보복 수단으로서 육, 해, 공군, 해병대 북파 특수 공작대를 중앙정보부 산하에 두고 각 군에서 강하게 육성 운영하라는 정부 특별 지시에 따라 극비밀리에 운영되어 오다가 역사에 불미스럽고 미스테리로 남긴 실미도 사건이 발생 하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지시를 따라 최초 강화도 화도면 마니산 북동쪽 끝 산기슭기에 자리를 잡고 막사 설립 계획 중에 있었으나 인근 지역에 부식되어 있는 회색 분자들에 의해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정보를 입수 분석한 결과 이동에 필요성을 느끼고, 68년 4월 불온면 까치골로 다시 이전하여 해병대 장기 하사관27명, 수병4명으로 편성하여 극비밀리에 훈련을 해 오다가 요원을 증편하고 고도화된 특수 훈련과 위치 보안을 위하여 길상면 사기리 마니산 정수사계곡, 함허동천 숲속으로 이동, 그곳에 기존 막사를 짓고 차원 높은 계획에 의해 특수 훈련을 지도하기 위하여 본인은 당시 해군참모총장 긴급특별 인사명령을 받고 북파특수 공작관으로 부임하게(74.4.15) 되었다.

 

훈련 목적은 북한의 주석궁(5호댁)에 은밀히 침투하여 요인들을 암살 납치하며, 북한군 특수8군단 정예부대에 지휘부를 와해시켜 모든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특수적인 교란 능력을 배양하고 항상 출전 준비 중에 있다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명령에 따른 어떠한 임무에도 불가능이 없이 임무를 완수하는 중앙정보부 산하 극비밀리에 운영되어온 비 편제 특수부대였다.

 

본명은 해병대 대위 김 영빈

 

군사 훈련 경력은,

해병 사단 특수수색대 소대장

해병대 특수수색훈련 7기

육군 특전단 기본공수 64기

해군 특수전 UDT/SEAL 18기

육군 특전단 Jump Master 46기(공인기록 108회)

공군 7069부대(오류동 첩보부대) 공중침투 훈련

해병북파특수공작대 공작관(실미도와 같은 비편제부대)

백령도 나바론 포대장

해첩(UDU)대북 특수 공작관

중앙정보부 대북 특수공작관

사단(포항) 해병특수수색대장(33명 구조 대통령 표창및 훈장)

당시 첩보에 따른 실존적 공작훈련 이수.

소령으로 예편 쌍룡그릅 차장으로 입사.

84년 미국으로 이민, ATS 신학대학원 졸업(MDV)

미국 C&MA 교단에서 목사 안수(89)

(저술: "흙에서 천국까지" 평신도 신앙교재 / 광야의 식탁 / 신앙 컬럼 )

 

1974년 4월-75년 9월까지, 해병북파특수공작대 공작 관으로 명을 받은 후 산과 바다와 공중을 무대 삼아 "칠 때는 성난 호랑이 같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피할 때는 무서운 독을 발하며 뱀 처럼 흔적 없이 은밀히 사라지는" 임무에 불가능이 없는 부대로 명명하고 피와 땀과 눈물과 의리와 전우애로 엮어서 어려운 모든 훈련에 임하였다 .

 

M I U ( Mission Impassible Unite )

(해병특수수색대장 당시 훈련 방침을 은밀, 신속, 정확으로 부대를 운영하였다)

 

당시 강화도 주민들은 까치부대에 대한 의구심과 호기심과 공포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어린 아이가 울면 "까치부대가 온다" 라고 하면 울음을 뚝 끝일 정도로 말이다.

 

1973년 9월 30일 해병대 역사에 치욕적인 불운을 앉은 체 해군예하로 합병됨에 따라 중앙정보부 산하에서 해첩으로 이관, 부대의 명칭을 해첩 503기지 (신성기업, 동해개발)로 명하였다.

 

아직도 역사 속에 숨어 있는 불미스런 사건이 해첩 UDU에서 또 다시 발생함에 따라 상부에서 분석하기를 503 까치부대의 위험성이 더 높은 것으로 판정되었기에 정책상 급히 해체 분산하므로 7년간 극비밀리에 전설 같이 운영되어 오던 해병북파특수공작대는 역사속으로 조용히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피와 땀으로 얼룩졌던 강화도 마니산 정수사 계곡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인경 소리와 함께 빈터만 앙상히 남아있고 졸졸 흐르면서 친밀감 있게 땀을 씻겨주며 갈증에 시달렸던 요원들의 마른 목을 적셔주던 고마웠던 계곡 물도 503까치부대와 함께 말라서 더욱 정 막감을 보여준다.

 

이제 전우들에게는 대한민국 특별 보상법과 예우법(2004.1.18 국회통과)에 따라 보상금을 1억에서 2억까지 계속 수령 중에 있으나 본인은 당시 공작관으로서 국가 공무원이라는 장교의 직분이라고 제외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적 사명감을 갖고 헌신한 것이었기에 만족감을 갖고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고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나의 소원이 있다면 다시는 인간병기로서 귀중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하여 하루속히 북한이 망하고 자유 대한민국으로 흡수되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하나님의 축복이 대한민국 국가와 백성들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도드리면서....

 

 

옛 까치부대 공작관

 

김 영 빈

 

 

 

 

강화도 사기리 함허동천 계곡에서 심신단련을 하는 요원들!

 

 

 

 

당시에는 장발족을 단속할 때라 ! 강화도 시궁창 물을 마시며, 윤종만(우측)동지 입가에 인분이 묻어 있으나...

 

 

해상침투를 위하여 PT 체조로 몸을 푼다음.....

유속이 심한 강화도 초지진에서 해상 침투훈련을 마치고....

김영빈 공작관(좌측 5번째) 과 기념 촬영을....

기구를 사용 고공으로 침투하는 훈련 ! 수원 상공에서 ....

 

 

당시 고공 침투 장비

강화도 갈상면 사기리 정수사 계곡에 위치한 사격장

 

강화도 길상면 사기리 갯뻘에서 인분을 뿌려 논 갯뻘 위로 포복하는 피부단련 훈련 !

적진안에서 숨어 있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가 바로 인분통과 하수도이기에.....

인분이 묻은 몸을 씻기에 좋은 Drop & Pikup 훈련과 고무뽀드 훈련 !

 

 

폭약 훈련및 무성무기 사용법

 

 

 

 

 

 

 

 

 

양평에서 해병북파특수공작대(miu) 4차 모임에서 이질법 털보가 인터뷰 !

뒷편에 무릅싸고 있는 동지가 입술에 인분 묻은 윤종만 동지 !

 

 

 

 

공작관 시절

 

중앙 정보부 시절

 

세월이 흘러 30 여년 !

 

2006년 9월22일 한국함대 진주만 입항

 

 

 

2007년 11월 5일

 

 

 

 

2008년 9월 21일

 

 

 

 

 

 

2010년 9월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면서 마니산 함허동천 계곡에 세워진 기념비 앞에서

 

 

2010년9월 고국방문길에 자랑스럽게도 옛 나의 부하가 6명의 대통령을 경호한 본부장으로 근무하므로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짐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0여년만에 만나는 옛 나의 부하들과 함께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면서 웃고 울며 밤을 지세웠답니다.

 

 

40여년만에 만나는 옛부하들의 총회장 임명제 그리고 해병대 공정식 사령관(해사1기/해병대6대 사령관)

김인식 사령관(해사24기/ 해병대 제26대 사령관) 과 함께 그때 그시절에 이야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