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구려는 왜 삼국통일을 하지 못했을까?
친가유
2009. 4. 4. 05:51
고구려는 왜 삼국통일을 하지 못했을까?
우리 역사상 아쉬운 부분은 너무나 많이 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는 없고,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불필요하지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것은 한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아쉬워했을 것이다.
당시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고구려가 왜 한반도의 백제와 신라를 병합해서 통일을 이루지 못했을까? 사실 고구려는 삼국을 통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충분히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는데도 왜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는가? 장수왕 시절만 해도 신라는 고구려의 완전한 속국이었다. 백제도 고구려에 패해 백제 개로왕이 죽음을 당했고, 수도도 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통일을 못한 이유를 분석해보자.
우선은 백제의 국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사서인 삼국사기의 기록대로라면 백제의 영토는 한반도 서남부에 있는 영역국가이다. 그러나 그 몇배의 영토와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가 백제를 정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백제의 영토와 국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소위 말하는 백제는 해상왕국으로서 요서 지방과 한반도 일본에 걸친 대제국이었다면 고구려가 쉽게 백제를 정복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은 설명할 수가 있다.
즉 양국은 서로간 힘의 균형 상태를 이룬 상태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접전을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방 이민족들도 상대해야 하는 고구려 입장에서는 근소한 힘의 우위는 있더라도 전력을 다해 백제를 공략할 정도의 힘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백제 역시 자력으로는 고구려를 멸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며 평양성을 빼앗았음에도 평양성을 획득하지 않고 한성으로 철수한 점이나, 광개토대왕이 백제의 한성을 정복하고도 이를 자국의 영토로 삼아 지배하지 않고 국내성으로 돌아간 것에서 알 수 있고 장수왕이 백제 경략을 한 후에도 완전 정벌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철군을 하는 이유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백제의 국력이나 고구려의 국력으로 서로 상대지역을 식민지로 영유할 정도의 국력 차이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지역을 정복해 다스리기 위해서는 항상 상대 지역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상비적인 군사력을 지니고 있든지, 피지배 지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당시 고구려나 백제는 상대 지역을 완전히 제압할 만한 전력을 지니지도 못했고, 자국의 지배에 대한 상대 지역민의 동의를 얻어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균형을 이룰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점은 우리가 알고있는 백제의 국력이 그 이상의 국력임을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일로써 당시의 백제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발견할 수 있어야만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고구려의 지리적 위치로 인한 문제이다. 고구려는 지리적으로 남쪽의 백제와 왜 이외에도 북서쪽의 후연과 거란, 북쪽의 비려와 동부여, 동쪽의 숙신 등 수많은 이민족과 맞서 싸워야 했다. 여기에다가 중국 왕조의 동향에도 민감한 신경을 써야 했다. 호시탐탐 고구려를 노리고 있는 이민족과 중국은 고구려에 약간의 빈틈이 생겨도 묵과하지 않고 고구려를 침입하는 문제 때문에 고구려는 남쪽으로만 전력을 기울이기는 힘든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즉 북방의 동향을 무시하고 전 군사력을 남으로만 동원할 수 없는 한계가 상존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광개토대왕 시기 400년의 남정은 가야성까지 빼앗을 정도로 성과를 거두었으나 끝내 백제와 왜를 멸망시키지는 못했다. 고구려가 남으로 군사를 돌리자 후연의 병력이 고구려를 공격해 고구려 서쪽의 신성과 남소성을 비롯한 700여 리의 영토를 빼앗은 사건이 발생한다. 후연은 고구려가 백제․왜와 싸우는 틈을 이용해 고구려 서북방을 공략한 것이다. 후연이 700여 리의 영토를 쉽게 빼앗은 것은 고구려가 남쪽으로 보낸 5만 병력의 공백이 그만큼 컸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백제의 무시 못 할 국력과 고구려 주변의 북방의 동향에 따라 군사를 일 곳에 집중할 수 없는 고구려의 지정학적 한계점으로 인해 고구려는 통일을 못한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한민족의 발전의 제약을 가져왔고, 결국 고구려가 멸망하고 뒤이은 발해의 멸망 후에는 만주는 한민족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