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이야기

계룡대 3군 본부 자리는 ‘도깨비 터’

친가유 2014. 12. 17. 23:13

 

계룡대 3군 본부 자리는 ‘도깨비 터’

 

 

 

 

 

군이 풍수를 고려해 주둔지를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전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풍수적으로도 훌륭한 위치를 찾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육군 임모 병장(22)의 동부전선 GOP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육군 22사단은 동네북이 됐다.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2012년 10월 25일에는 22사단이 관할하는 동해선 경비대에서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뚫고 생활관(내무반) 문을 두드리는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이 일어나 장성 2명과 영관급 장교 2명이 징계를 받았다. 동해안과 내륙 GOP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는 22사단 56연대의 경우 2010년 10월 17일에는 민간인 강모씨의 월북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중대장부터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지휘라인이 모두 보직해임되기도 했다.

앞서 30년 전인 1984년 6월에는 사망 11명, 부상 12명 등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역대 최악의 대형 총기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22사단 56연대 4대대 소속이었던 조모 일병은 생활관에 수류탄을 투척한 뒤 자고 있던 동료 병사들에게 총을 난사한 후 월북했다. 이외에도 22사단에서는 여러 차례 총기사고와 함께 어선 월북사건, 민간인의 총기 탈취사건 등이 일어나 ‘군내 사건·사고의 백과사전 같은 곳’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붙기도 했다.


22사단 사고 잦아 부대명도 바꿔

22사단에서 각종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독특한 지형적 위치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원 고성에 자리잡은 22사단은 육지와 해안을 모두 담당하는 부대다. 휴전선을 지키는 육상뿐 아니라 동해의 해안경계도 맡고 있다. 전방 28㎞, 해안 69㎞ 등 총경계선만 97㎞에 달한다. 특히 22사단 56연대는 동해안과 내륙 GOP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다. 다른 전방사단의 1개 GOP가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구역이 통상 300~400m인 데 비해 22사단에서는 1개 GOP가 맡는 철책 길이만 1㎞ 이상이다. 가파른 산악지대에서 소초원 30~40여명으로는 사실상 정상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22사단은 한마디로 풍수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근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2사단은 사고 근절을 위해 분위기 쇄신 차원의 부대 개명을 하기도 했다. 동부전선 22사단의 부대 명칭은 과거 ‘뇌종부대’였다. 순수한 우리말로 풀이하면 ‘벼락종’, 즉 적에게 벼락과 같은 충격을 안겨준다는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병사들은 ‘골 때린다’ 또는 ‘뇌종양’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했다. 부대에서 나쁜 일이 계속 벌어지는 걸 부대 명칭과 연관시킨 것이다.

그러자 당시 사단장인 이성출 소장은 부대 명칭을 ‘율곡부대’로 바꾸었다. 이는 성공적인 개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李珥) 선생의 호를 사용했다는 점과 이이는 곧 사단명칭의 숫자 ‘22’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이 소장 역시 육군 대장까지 진급해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부대명칭 변경도 22사단이 지닌 풍수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번에 또다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군에서도 무슨 일이 터지면 풍수와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점은 일반 사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천안함 소속 부대로 평택 원정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해군2함대사령부의 터를 놓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지금의 부대 자리에 공동묘지가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거슬린다며 천안함 침몰과 무슨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해군2함대는 1990년대 들어 인천에서 원정리로 이사오면서 연고지 없는 묘지의 유골들은 다 화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걸 보면 이름 없는 묘지의 주인들이 고마워할 일이지 해코지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2005년에 연천 총기 난동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28사단 사령부가 경사진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라고 일부 군인들은 수군거렸다.

계룡대 3군 본부가 있는 엄사리는 원래 ‘도깨비 터’로 알려져 있다. 엄사(奄寺)라는 지명도 과거 음절마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엄사리 주변에는 종교 관련 건물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러나 도깨비도 무인(武人)의 기를 당해내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계룡대 터는 도깨비까지 제압하는 군인들이 생활하기에 제격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 엄사리에 있는 음식점들은 군내 사건·사고만 생기면 ‘파리’를 날린다. 군내 기강 확립이라는 이유로 툭하면 ‘회식 금지’ 명령이 내려지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도깨비 터’ 엄사리 음식점들의 매출은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마치 도깨비 장난처럼 들쭉날쭉이다.


군사 요지가 풍수적으로도 뛰어나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들어서 있는 서울 용산 국방부 부대 내에는 ‘용머리’로 알려진 조그만 언덕이 있다. 국방부가 신청사를 건설할 당시 원래는 이 용머리 언덕이 깎일 예정이었는데, 풍수적으로 이곳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이 나돌자 군 수뇌부는 이 언덕을 그대로 둔 채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풍수의 본래적 의미를 ‘기후와 풍토,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군과 풍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군부대 주둔지를 정할 때 풍수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입지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이 풍수를 고려해 주둔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전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풍수적으로도 훌륭한 위치를 찾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현역 장군으로 있을 당시 ‘기관총 진지 선정 시 고려사항’을 기반으로 해서 묏자리를 찾았는데 40년 경험의 지관이 탄복한 명당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적도 있다. 기관총 진지로 마땅한 곳을 염두에 두고 한겨울에 땅을 파는데 장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고, 파다 보니 커다란 두꺼비도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집터를 볼 때도 지휘소 위치 선정 시 고려사항을 적용하여 집터를 정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군사작전의 최우선 고려 요소인 관측과 사계, 은폐, 엄폐, 진출입 등의 요소를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풍수적으로 완벽한 곳을 찾을 수 있다는 식이다. 실제로 서울시내에서 야경이 가장 훌륭한 장소는 북악산에 있는 벌컨포 중대 자리다. 적기를 요격하기 위해서는 앞이 훤히 트여야 하는 게 기본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군부대가 있던 방향은 그 지역의 혈기이자 숨통의 자리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