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의 궁예
궁 예 (弓裔)
어릴 때 도망가 살았던 세달사(世達寺)는 흥교사(興敎寺)로,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남쪽 50리
※ 삼국사기 열전 제 10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궁예는 본래 신라 사람이다.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 AD.856∼859년)의 빈(嬪)의 몸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또는 48대 경문왕(景文王)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음력 5월 5일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궁예가 외가에서 태어날 때 집 위로 흰빛이 무지개처럼 길게 하늘로 향한 것을 본 관리가 말하기를, 5월 5일에 태어날 때 이가 나 있었고, 연기같은 이상한 빛이 있었으므로 장차 나라에 불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중사(中使)라는 관리를 시켜 궁예를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 관리는 궁예를 취하여 강보에 싸 다락에서 아래로 던져버렸다. 이때 유모가 궁예를 밑에서 받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으로 궁예의 한 눈을 찔렀는데, 그대로 안고 도망쳤다. 궁예는 이때부터 한 눈을 실명한 채 10여 세가 되었는데, 노는 것이 지나칠 정도로 위험스러워, 유모가 노는 것을 중지시켰다. 유모가 나라에서 버린 자식임을 실토하자, 궁예는 참지 못했다. 그리하여 유모는 이 일이 알려지면 궁예가 위험함을 느끼고 떠나자고 하자, 궁예는 눈물을 흘리며 그 길로 세달사(世達寺)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세달사(世達寺)인 흥교사(興敎寺)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236쪽에 의하면, 지금의 섬서성 장안현(長安縣) 남쪽 50리로 되어있고, 번천(樊川)의 북쪽에는 당나라 때 세운 현장탑(玄 塔)이 있다고 되어있다.
※ 궁예의 출생한 연도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필자가 조사해 보니, 후당(後唐) 대순(大順) 2년에 궁예 나이 28세로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연대를 추적하여 고증해본 결과 후당(後唐) 대순(大順)의 연대가 AD.890년이며, 대순 2년에 궁예 나이 28세로 죽은 것을 계산해 보니, 그가 태어난 해는 AD.865년이었다.
간지(干支)로 따져보면 기유년(己酉年) 음력 5월 5일 생으로 밝혀지는 셈이다